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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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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책임”

진실·책임이 이끄는 변화
기억·약속이 만드는 내일

안산이 품고 대한민국이 기억하며 세계가 찾는
4.16생명안전공원

2024년 10월, 모두가 기다리던
4.16생명안전공원이 첫 발을 내딛습니다.

자세히보기
“얘들아 잘 있니?”

그날,
우리 아이들과 했던 약속을
엄마 아빠는 기억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 입니다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를 멈추게 하는 길은,
처벌되지 않는 책임의 역사를 청산하는 것 입니다

알립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알려드립니다

그 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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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생일

  • 4513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1일(음력 9월 1일) 일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최남혁의 생일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잘있지?날씨가 너무 덥다.네가있는 그곳은 어때?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이 오겠지.그럼우리 아들 생일인데니가 없는 생일 엄마는 너무 아프다.마음이 아프다해맑게 웃는 아들 모습이 그립다.잘 지내고 또 올게. 사랑해 혁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검사의 꿈》남혁이는 중3 여동생이 있는 맏아들입니다.남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도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남혁이는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동생을 잘 돌봤다고 합니다.어린 여동생이 유치원에 다녀오면 살뜰하게 챙겨줬고 공부도 가르쳐주던 살뜰한 오빠였습니다.   ​남혁이는 초등학교 때까지도 활달하고 게임을 즐겨하며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했는데사춘기를 겪고나서는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어머니는 남혁이가 사춘기때 어머니 마음쓰시게 했던 것이 미안했던 마음에 그랬던것같다고 하셨습니다.사춘기이후 남혁이는 시간관리도 철저하게하고잔소리 할 일도 없이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잘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남혁이의 꿈은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검사가 되는 것이였습니다.하지만 남혁이의 꿈과 미래를 세월호는 침몰시켜 버렸고,대한민국은 304명의 영혼을 집어 삼켜 버렸습니다.   남혁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요즘 오빠가 더 보고 싶어져.항상 보고 싶었지만 5일뒤면 오빠 동생 생일이야.동생 생일날에 꼭 꿈에 나와서 축하해 줘야해!나중에 만나서 그때 사줬던 토스트 사주는거다~♡난 오빠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줄테니,언제나 사이 좋은 남매로 지내자.사랑해.♡》 목록수정
    4.16가족협의회 09-26
  • 4519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조성원 학생의 생일입니다. To 조성원 오빠바보, 똥꾸멍, 오징어 오빠야....오빠 차가운거 겁나 싫어 하잖아맨날 나한테 보일러 틀어 달라 하잖아....이젠, 앞으론 그러지 말고 따뜻하게 손난로 써야돼.오빤 특별히 두개니까혼자 다 써야된다.성원이 동생 오징어 아름. 조성원.성원이의 꿈은 역사선생님이 되는 것 이였습니다.성원이는 담임선생님이신 고 이해봉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중앙대학교에 진학하여 이해봉 선생님처럼 역사 선생님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성원이는세살 어린 여동생과 열 살어린 남동생이 있는 삼남매의 맏이입니다.활달한 성격에 친구도 많고 좋아하는 선후배도 많은 인기남 입니다.만화영화 둘리에 나오는 케릭터 마이콜과 피부와 머리 스타일이 닮았다하여친구들은 "마이콜성원" 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다고합니다. 동생들도 잘챙겨주었던 성원이는 특히 꼬마 막둥이를 많이 챙겼고 막둥이도 형을 잘 따랐다고합니다.또 엄마와도 너무 친해서 비밀도 없었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늘 엄마곁에 껌딱지처럼 언제나 붙어다녔던성원이를 어머님은 "마마보이"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항하기 전날인 4월15일 저녁에 성원이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안개가 많이 끼고 날씨가 좋지 않아 출항이 미뤄졌다는 말에 어쩐지 불안하다고 하였으나 성원이는 괞찮다고 어머니를 안심시켰고 그렇게 대화를 마쳤습니다.그것이 어머니가 들은 성원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막내 록이도 지켜주지 못한채,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엄마,누구보다 믿어 주고 지지해 주는 엄마,친구 같은 엄마를 남겨 두고 성원이는 우리들 곁을 떠났습니다. 성원이는 하늘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10-17
  • 4519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9반 김아라 학생의 생일입니다. "slow and stead win the race"아라 책상위에 쓰여진 문구입니다. 아라의 꿈은약사가 되는 것입니다. "황금손"아라가 초등학교때부터 책상에 써 붙인 글입니다.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황금손"이 되겠다고 늘 말했다고 합니다.아라는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를 잘했습니다.대학때 화학을 전공한 아빠와 영문학을 전공한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특히 과학과 영어를 잘했습니다.중학교때부터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탔습니다. 아라는 여섯 살 많은 오빠를 둔 착하고 성실한 막내딸 이였습니다.말썽도 안부리고 자기 할일은 알아서 하는 아이였으며, 비싼 옷이나화장품등은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라 본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주말에는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고합니다.특히 같은 반 향매에게는 영어를 가르쳐주고 향매에게는 중국어를 배우는 사이였습니다. 부모님께 세상 보물 1호였던 아라였습니다.아빠는 쉬는 날이면 김치 된장찌개, 짜장면, 짬뽕, 탕수육, 낚지볶음, 잡채밥까지 아라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만들어 줄 정도로 아빠의 모든 것 이었습니다.아라가 숙녀가 되어 짝을 만나게 되면"내 딸 잘 부탁하네" 하며술 한잔 권하려고 담가 놓았던 10년이 넘은 인삼주는 이젠 주인을 잃어 버렸다고 하십니다. 버스운전을 하고 퇴근하고 돌아 온 아빠에게 "아빠, 힘들어서 어떡해. 아빠가 고생하는 거 나 다 알아.이담에 내가 아빠 호강시켜 줄 때까지 건강해야 돼"약속했던 아라는 지금 아빠 곁에 없습니다. "미안하다.꼭 너의 억울함을 풀어줄게.끝까지 끈질기게 싸울게.잠시 하늘 나라에서 천사로 있다가 다시 내 딸로 태어나서 못 받은 사랑 더 많이 받아야지..." 아빠. 아라는 세월호 참사 6일 만인 4월 22일 가족의 품에 돌아와지금은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잠들어 있습니다.  목록수정
    4.16가족협의회 10-17
  • 4519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10반 이가영 학생의 생일입니다. "우리가 웃고 떠들면서 놀던 때가 엇 그제 같은데 너가 우리 품을 떠난지도 1년째라니우리가 작년에 너 생일 챙겨주러 갔을 때 그날 ㅇㅇ이 꿈에 나와서너가 "고맙다"라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었는데 ....." 이가영.가영이는 네 살 위 오빠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어릴때부터 오빠를 잘 따랐고 오빠 또한 가영이의 든든하고자상한 오빠로 알뜰살뜰 잘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아빠와 오빠가엄마의 껌딱지. 엄마의 진드기"로 놀릴 정도로 엄마를 좋아했고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옆에 있으면 어김없이 팔짱을 끼었답니다. 가영이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가영이는 아기 자기한 인형들을 모아 창가와 침대 머리맡을 장식하는 평범한 열 일곱살 소녀였습니다. 그리고달팽이를 키우는 취미가 있어서 플라스틱 통안에 흙을 깔고 분무기로 물을 주면서 자기손으로 달팽이를 두 마리나 키웠습니다. 3년동안 가영이는 단 하룻밤도 달이와 팽이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이때부터 가영이는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고합니다. 집에서는가영이는 오빠하고 자주 토닥 거리면서 싸우곤 했지만오빠가 군복무를 하게 되자 오빠가 제대해서 집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가영이를 잃고 부모님은 특별법제정과 진실규명,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국회 농성에 참여 하셨을때 가영이 오빠는 이"나쁜나라"의 부름을 받고 의경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10반은 단 한명의 생존자만이 돌아왔고 선생님은 생존하셨습니다.가영이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보고 싶은 딸♡가영아!오늘 생일 축하해.어느덧 두 번째 생일을 맞게됐네.이런식으로 너의 생일을 축하해야하는 현실이 엄마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단다.거기서는 선생님과 친구들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을거라고 생각할게.여기서 하지 못했던 것들은 거기서 다하면서 살고 있어야돼. 알았지.너무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 내 딸.I LOVE YOU.......엄마가........   목록
    4.16가족협의회 10-17
  • 4517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3반 유예은 학생의 생일입니다.   "내딸 예은아 !네 삶을 ,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보고 싶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사랑한다는 말이 이토록 허무할 수가 없구나받아만 준다면영원히 예은이 아빠이고 싶구나2015.8.30 아빠"   예은이는 이란성 쌍둥이입니다언니는 3.3킬로그렘인데 반해 예은이는 2.6킬로그렘으로 작게 태어났다고 합니다.성격도 조금씩은 달라서 언니는 여자답게 정숙한데 비해 예은이는 어렸을적 왈가닥이었다고 하네요.하지만숫기 없고 순진했으나 무대에서 만큼은 열정을 불태웠던 18살 소녀이기도 했습니다.   예은이의 꿈은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였습니다.처음 가수가 되고 싶다했을 때 부모님은 사춘기 때 으레 갖는 호기심이라고 여겼지만예은이가 한 방송사 오디션 참가신청서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보컬학원에 등록했을 때" 라고 쓴 것을 보고는그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어떤 일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예은이가 대견스러웠다고 합니다."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예은이는 수학여행 전날에도 뮤지컬학원에 나가 꿈을 키웠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과일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교회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던 착한 예은이는 4월16일 09시"배가 90도 가까이 기울어졌어. 너무 무서워" 라고 처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이어 10시 15분 "아직 객실이요"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4월 30일 뮤지컬 (켓츠)공연을 예매했던 예은이..할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도 많이 연습해서 꼭 즐겁게 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던 예은이.그토록 속꼽아 기다렸던 공연장엔 결국 가보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인 4월 23일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10-15
  • 4517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김인호 학생의 생일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인호야 잘지내지?넘 보고 싶다 ㅠㅠ넌 천국에서 잘지내지 .자꾸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싫어.너를 위해 눈물 밖에 흘릴수 없네...엄마 안 보고 싶니?엄마는 우리아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ㅠ할말은 많은데 우리 아들 엄마가 또 잔소리 한다고 싫어할까봐 오늘은 좀만 울고 좀만 잔소리 할게.. 사랑한다 사랑한다.그리고 미안해. 정말 너무 너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사랑한다. 우리 인호"   사랑했고,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인호.인호는 남동생이 있는 형제중에 맏이입니다.   인호는 꿈이 많은 아이였습니다.경찰 할까, 소방관 할까, 군인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일요일미다 챙겨 보던 (동물농장)을 보며 사육사가 되고픈 꿈도 키웠습니다.   평소 말수는 없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에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했던 착한 아이였습니다.늘 동생을 걱정하면서 덤벙대지 말라고 충고하고 엄마가 일 때문에 늦게 집에 오면 힘든 엄마를 위해 대신 밥을 하고 엄마 다리가 통통 부었다고 주물러 주던 착한 효자 아들이였습니다.   "어머, 차 예쁘다. 엄마도 한번 타보고 싶네"   인호와 엄마가 길을 걷다 지나가는 빨간 스포츠카를 보고 엄마가 말하자 인호는 엄마에게 "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사줄게" 라고 약속 했습니다.4월 7일은 엄마의 생일이였습니다.인호는 그동안 용돈을 모아 손목 시계를 엄마에게 선물했습니다.그러면서 다음에는 스포츠카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4월 15일 세월호에 오르기전 인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합니다.엄마는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라며 인호에게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다음날인호와 친구들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앞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인호는 4월 23일에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운동신경이 좋았던 인호였기에 살아 돌아 올 거라고 믿었지만 인호는 마치 잠든 것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인호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엄마는 지금도 인호가 선물해준 시계를 차고 계십니다.   "우리 그냥 잠깐 헤어진 거야.조금만 기다려.그때는 우리 다시 헤어지지 말자.친구 많이 사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아프지 말고. 사랑해.그리고 미안해.지켜주지 못해서.............엄마가."   
    4.16가족협의회 10-15
  • 4516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인태범 학생의 생일입니다. * 내 몸이 이래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요.끝까지 싸워줘요.끝까지 밝혀줘요.* 이글은 오늘 생일을 맞은 5반 인태범군의 아버지 인병선님의 유언입니다. 태범이는누나가 둘이 있는 삼남매의 막내였습니다.애교 많고 붙임성 좋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다섯 식구의 막내였으며사촌들과 친척들의 중심에는 늘 태범이가 있었습니다.누나에게 10,000자 편지를 쓸 정도로 다정한 동생이었고 누나가 퇴근할 때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고 화랑유원지 운동을 할때면 뒤따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응원을 해주던 귀여운 막내이기도 했습니다. 태범이는같은 반 친구인 창현이와 친했고 가끔씩 창현이가 태범이 집에 놀러오곤 하였답니다. 태범이 아버님의아들 사랑은 남달랐다고 합니다.세월호 참사가 일어 났을 때 태범이 부모님은 진도로 달려가셨습니다.태범이도 사고 후 닷새만에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그러나태범이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버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아들 없이 사는 것이 너무 허망하다. 이래 살아서 뭐하느냐" 며 낙담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입맛도 없고 밥을 먹어도 소화도 안되어 고생하셨지만 스트레스 때문일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그러나 먹을 것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서 참사가 일어난지석 달만에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진단은 담도암 말기였습니다.아버님은 4월초 (세월호 참사전)모 대학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건강검진을 받았고 당시만해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다른 모든 부모님들이 아이를 찾느라 정신이 없어서,그후엔 진상규명을 나서면서 제대로 건강을 챙기지 못했습니다.세월호 참사만 터지지 않았어도 미리 검사하고 일찍 발견해서 최악을 막을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태범이 아버님은 태범이 생일이 지나고2주후인 10월 26일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 태범이 곁으로 가셨습니다. 돌아가실때"태범이다" 하고 환하게 웃으시며 눈 감으셨습니다. 태범이와 아버지 인병선님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나란히 한 유골함에 잠들어 계십니다. 
    4.16가족협의회 10-14
  • 4514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김완준 학생의 생일입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후 안산시내에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족자가 걸렸습니다. "내 아이가 다시 돌아온다면따뜻한 밥 지어함께 먹고싶어요다시 만날 수만있다면........." "완준아빠 김필성, 완준엄마 한해영" 바로 오늘 생일을 맞은 김완준의 부모님이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글입니다. 완준이는 외동 아들입니다.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으며 때론 까칠하다가도어머니께는 늘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속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겉으로 표현은 않았지만 형제가 있는 사촌들이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늦은 결혼 때문에 동생 대신에 강아지를 키우기를 원했던 완준이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한달전에 동생이라며 푸들 "아롱이"를 집으로 데려와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중해서 아빠처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을 꿈꿨으며,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완준이는 만화 중에서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을 좋아했었던 완준이의 꿈은 프로파일러, 범죄심리분석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완준이는세월호가 기울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했으며119와 122에 사고신고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복원된 휴대폰 속 사진에는 "가만히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장난치던 친구들의 모습들과 물이 차 오르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불안해하며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겨져 있습니다. 완준이는 4월22일 가족의 품에 돌아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유골함에 어머니는 손수 뜨개질한 털모자를 씌워주었습니다.또한 5반 희생된 전체 아이들의 사진을 뜨개질로 표현하시며 완준이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하나뿐인 외동아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하늘에서 슬퍼하고 있는 우리 아들의 영정사진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현실이 힘들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도 밝혀내지 못한 부모가염치없이 영정사진을 앞세워 행진하려 한다.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랄뿐이다." 지난 1주기 때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도보행진을 하던 완준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목록수정삭제답변
    4.16가족협의회 10-12
  • 4514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8반 지상준 학생의 생일입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무언가 나쁜 예감이 들었던 거니?엄마도 보내기 싫었지만 다녀와서 친구들이 재미있게 웃고 떠들고추억을 이야기할 친구들 사이에 함께하지 못할까봐 수학여행을 보냈단다.지금에 와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지만 하나뿐인 너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상준이는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늘 집에서 혼자 책을 읽었습니다. 용돈을 줘도 다른데 쓰지 않고좋아하는 책을 샀으며 엄마가 용돈을 주면서 좀 밖에 나가서 놀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가끔은 소설을 쓴다며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상준이는겉으로 보면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였습니다.가끔씩 철학적인 말을 툭툭던져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중학생 때는 엄마에게 다가와 갑자기 세 번이나 "사랑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상준이는 쑥쓰러워 하면서 "사람이 하루에 "사랑한다"라는말을 세번 들으면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상준이는 바람을 무적 좋아했습니다.초저녁에 부는 신선한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으며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며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겨 타기도 했습니다. 상준이는 4월 30일에야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엄마는 장례를 치른 후 상준이를 평택서호추모공원으로 데려갔습니다.탁 트인 높은 곳에 있는 납골당이라서 상준이가 좋아하는 바람이 잘 불어오는 곳입니다.  목록수정삭제답변글쓰기
    4.16가족협의회 10-12
  • 4512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생일입니다. "어머니, 은화가 좋아하는 걸 바다에 던지면 은화가 그걸 받고 돌아올 거예요." "그럼 제가 들어가야 해요. 은화는 저를 가장 좋아했거든요" 팽목에서 은화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자원봉사자가 던진말에 어머니의 답변입니다.말씀처럼 은화와 어머니는 때론 친구처럼 각별할 모녀지간에 너무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엄마의 껌딱지로 불리울 정도로 엄마를 좋아했고 늘 부모님께 기쁨을 주던 아이였습니다.엄마도 은화를 무릎위에 앉혀놓고 다정스레 "예쁘다, 예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 늘 속삭여 주었습니다.그런 엄마를 은화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엄마와 수다를 떠는 것이 너무좋아서 은화는 샤워를 할때도 엄마한테 화장실에 같이 들어와서 변기 위에 앉아 계시라고 하고 자기는 샤워를 하면서 학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종알 종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태어날 때 병약해 큰 수술을 받았던 오빠와 달리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학교생활도 우수한 성적에 속 한번 썩이는 일없이 자랐던 은화였습니다. 《은화야 1년이 넘었다.그날 마지막으로 본 너가 잊혀지지가 않아.니가 소정이 부르던 것도, 반 애들 침착하게 도와준 것도 기억난다. 보고 싶어.....은화야 빨리 나와줘.... 보고 싶어....민지 장례식 밖에 못 챙겨 줬었는데... 너라도 제대로 챙겨주고 싶어....지금도 힘든데 그날은 더 힘든겠지?난 아직 너가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것 같이느껴져....그래서 이사갔다라는 느낌으로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 기나긴 기다림의 끝.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되고 오랜 수색 끝에 마침내 은화는 1135일 만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진도앞 맹골수도에 잠긴 세월호 속에서 세번째 생일을 맞았던 은화도 네번째는 부모님 곁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은화는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목록수정삭제답변글쓰기
    4.16가족협의회 10-10
  • 4512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6반 김민규 학생의 생일입니다. Part 1. "나 매일 다 귀찮은데너네반 내려오는것 하나도 안 귀찮아서 나 매일 내려온다.나 착하지? 기특하지? 그럼 칭찬해주던가 말던가ㅎㅎㅎ근데 진짜 한번도 안귀차나.세번씩 와야징.이제~♡♡누나." 민규의 꿈은 엄마에게 펜션을 사줄정도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것이였습니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며 돈을 모아 40대 중반이 되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밝히곤 하였답니다. 엄마가 우울해보이면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려 휴대폰으로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며 웃게 했고 엄마가 아프면 뛰어가 약을 사올 만큼 효자였습니다. 민규 엄마는 민규의 생일에 민규가 잠든 평택서호추모공원을 찾아가 새 휴대전화를 선물로 줬습니다. 민규의 책상과 6반 교실에는 민규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메모들이 있습니다.평소 민규의 성실함과 착한 심성들이 많은 그리움의 편지 속에 묻어나 있습니다.같은날 생일을 맞은 은화와 열흘전 생일을 맞은 다윤이, 그리고 민규의 반친구들인 영인이와 현철이....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생일을 맞는 것을 꿈꿔봅니다. "민규야부디 그렇게 아프게 갔으니 하늘에서는 좋은곳에서 잘 지내기 바란다.우리가 끝까지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는 너희를 떠나보내게 한 그 나쁜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나쁜짓 안할 수 있겠지.끝까지 너희와 함께 할게 여전히 교실은 그대로이고 남은 가족들도 변한게 없는데 너는 그렇게 떠나서 우리 곁에 없구나.이렇게 많은 국화꽃의 갯수가 다 너희 한명 한명이라는게 정말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서 나중에 당당하게 꼭 다시 찾아올게.언제나 잊지 않을게.보고 싶다..... 민규야....." Part 2. 기억교실이 학교에 있을때 책상위에 가장 많은 포스트잇이 남겨진 아이가 있었습니다."다쳐서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 라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민규와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엄마, 난 사는 게 너무 행복해" 민규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입니다.학교 생활도 재미있게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대학교, 청계천등을 놀러다니며 좋아라하고 행복해하던 모습을 남겼던 민규였습니다. "엄마는 꿈이 뮈야?""나중에 시골에 펜션 지어놓고 아들들이 놀러 오면 고기나 구어 먹고 살고 싶어"하자,"내가 쉰 살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꼭 엄마한테 펜션 사줄게" 약속했던 민규였습니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며 돈을 모아 40대중반이 되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그림을 그렸던 민규였습니다. 엄마는세월호 사고 후 6일째인 4월 21일 다른 엄마들과 함께 배를 타고 사고해역으로가 아들이 사라진 바다위에서 한 시간 넘게 "민규야 빨리 나와달라"고 말했답니다.민규는 다음날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습니다.아이들 생각에 밥을 먹다가도 울컥해 밥이 넘어가지 않고,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 어릴적 모습이 생각 나고, 연인들을 봐도, 학생들을 보면 더더욱....민규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삶의 활력소요 비타민, 또 희망이였던 민규를 잃어 버렸습니다. "사랑한다, 아들아,짧은 생이었지만 엄마 아들로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사랑하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내 아들 민규."   
    4.16가족협의회 10-10
  • 4510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8일 목요일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4반 빈하용 학생의 생일입니다. 하용이는 삼형제 중에 장남입니다.어릴적 과학동화전집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며 글을 깨우칠 정도였습니다.조용한 성격에 풍부한 상상력,연필과 스케치북만 있으면 그림을 그리던 소년, 빈하용에 대해 많이들 아시다시피 하용이는 꿈은 일러스트레이터 였습니다.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해 연습장, 스케치북 뿐만 아니라 가정통신문, 수업유인물 등 빈공간이 있는곳이라면 어디든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런 하용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작 1년 남짓.남들보다 조금더 건장한 하용이에게 부모님은 태권도를 시켰고 어려운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하용이는 "미술이 하고싶다"고 용기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탓이였습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용이는 특유의 감각과 성실함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합니다미술학원에서도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 "학원의 유망주"라며 하용이를 주목했습니다.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예술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꿈많은 소년의 미래를 확인할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하용이는 조용한 성격이였지만 주변에서는 "미술 유망주“로 통했습니다.  부모님은체격이 큰 하용이를 위해서 폭이 넓은 하용만의 전용의자를 구해줬습니다.대부분의 미술학도들이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지만 하용이는 음악을 듣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합니다.하용이의 그림은 지난해 서촌겔러리와 미국에서도 전시 되었습니다. 또한 하용이는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도 챙겨주고 청소도 하는등 효자이기도 했습니다. 천재적인 그림솜씨를 뽐내던 하용이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목록수정삭제답변글쓰기
    4.16가족협의회 10-08
  • 4509번째 4월 16일 2026년 10월 7일 수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7반 김정민 학생의 생일입니다. 정민이는 삼남매 중에 맏이입니다.튀김, 떡볶이, 순대 등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그중에 순대볶음은 직접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대접할 정도로 요리 실력을 뽐냈던 정민이는 집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잘챙기는 의젓한 형이고 오빠였습니다. 1학년때는 반장, 2학년에 올라와서는 부반장을 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였고 수준급 피아노 실력과 시크한 미소까지 갖춘 매력적인 아이였습니다.정민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반반씩 쏙 빼닮은 미남입니다. '사랑합니다'고1때 반장에 당선된 후 정민이의 인사말 입니다.친구들은 정민이의 장단점으로 말수가 적다는것을 이야기 합니다.이처럼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평소 말수가 적고 표현이 무뚝뚝했던 정민이는 수학여행을 가기전에 어머니께 피아노 연주를 해주었습니다.정민이 어머니는 지금도 정민이의 피아노 연주를 슬픔 속에서도 큰 추억으로 간직하고 계십니다. 참사 후 정민이 친구로부터 받은 동영상속 정민이는 이와는 달리 친구들과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선보일 춤을 추는 모습과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민이 아버지는 정민이가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기전날 인터넷게임을 자주한다고 혼낸 것이 뭇내 마음에 걸린다고 합니다.야단 친뒤 떠난 수학여행이라 서로 서먹해져 4월16일 침몰사고 당일 아침에도 아들과 연락 한번 주고받지 못한건 아닌지 아쉬워하십니다. 정민이는 아버지가 교회장로이신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정민이를 찾지 못하고 기다림이 길어지자 정민이를 주님 곁에 보내는 마음을 기도로 표현한 기도문이 널리알려져 있습니다.(사진 참조) 학교에서 정민이는세호와 승환, 민수, 현철. 수빈이등과 친했습니다.정민이는 친구들에게착하고 너그러운 성품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성실했던 정민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가끔은 매점책상에 앉아 쿠키런 게임도 했다고 합니다. 정민이와 세호는 절친중에 절친입니다.세호와는 수학여행을 가기전에세호는 정민이에게 모자를, 정민이는 세호에게 바지를 빌려주었다고 합니다.사고 후 짐을 정리하다 정민이가 빌려주었던 바지를 돌려 주었는데 정민이는 자신의 바지가 아닌 아버지의 바지를 세호에게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장남이자 사랑스런 동생들의 의젓한 형, 정민이의 푸른 꿈을 실었던 세월호는 목적지인 제주도에 도착하기전인 진도앞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정민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10-07
아이들 생일더보기
아이들이 곁에 없는 4월 16일은 매년 돌아옵니다.

봄날, 길가에 피어나는 꽃만 보아도 마음이 시립니다.
아이를 보고싶고 만지고싶어 꿈에라도 찾아와주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이기에 그날 희생의 무게만큼
책임자가 책임지게하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별이 되버린 아이들이 꿈꾸던 삶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관계기관

안전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곳


  •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 안산사무실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685(초지동 666-2) 산업지원본부(옆) (우)15396
  • 서울사무실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45 임호빌딩 6층 (우)03127
  • 사업자등록번호 727-82-00042
  • 대표 김종기
  • 대표전화 031) 482-0416 (월~금: 오전 9시~오후 5시)
  • 팩스 031) 413-5380
  • 이메일 416family.org@gmail.com
  • ※ 세월호 팽목기억관 주소 (우)58945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길 101 팽목마을 ‘(가)세월호팽목기억관’
  • ※ 목포신항 주소 (우)58762 전남 목포시 신항로 294번길 45 세월호 목포신항만거치소
  • ※ 2014-0416 세월호 제주기억관 주소 (우)6331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300-2
  •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2014-0416 세월호 제주기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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